삶의 저녁에 피는 꽃

 설렘이라는 이름의 작은 떨림

古軒 박찬홍



언제부턴가 설렘은 젊은 날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첫사랑의 떨림, 첫 월급의 기쁨,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길에서 느꼈던 두근거림…

그 모든 설렘은 늘 앞을 향한 걸음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오후를 지나 저녁을 맞이하고 보니,

설렘은 결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살며시 깨닫게 되었다.


새벽녘 마당에 내려앉은 이슬을 보며 느끼는 고요한 떨림,

오랜만에 찾아온 벗의 안부 전화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순간,

손자 손녀가 건네는 “할아버지, 사랑해요”라는 한마디에서 느끼는 가슴 벅참…

이 또한 분명 설렘이 아니겠는가.


젊은 날의 설렘이 불꽃 같았다면,

지금 이 나이의 설렘은 숯불처럼 오래도록 따뜻하다.

크게 타오르지 않아도, 속 깊이 온기를 전하는 조용한 감정.

때로는 찻잔 위에 맺힌 김처럼 사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오늘도 설렌다.

사진기에 담긴 노을의 붉은 빛을 바라보며,

내일 아침엔 어떤 햇살이 찾아올까 상상하며,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아직 피지 않은 한 송이 꽃을 기다리며.


노년의 설렘은 바라봄에서 시작되고,

기다림에서 자라고,

기억 속에서 피어난다.


외암마을 사립문 풍경


그리고 그것은 삶을 더 깊이,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설렘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작지만 단단하게, 오늘도 나를 숨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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